1. Articles
  2. 하나님의 사도 무함마드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
  3. 출생지와 유년기

출생지와 유년기

예언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는 서력 571년, 그 당시 아라비아 반도의 종교적 중심지였던 ‘메카’에서 태어났으며, 모든 아랍인이 그 고귀함을 인정하는 ‘꾸라이쉬’ 부족 출신이다. 아랍인들은 메카에서 성지순례를 실시하였으며 메카에 있는 ‘카으바’(정육면체 모양의 건물) 주위를 돌곤 하였다. 카으바를 지은 자는 예언자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다. (두 명 모두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예언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는 고아였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그의 어머니는 그가 여섯 살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 그의 할아버지 ‘압둘 무딸립’이 그를 돌보았고 그의 사후, 삼촌인 ‘아부 딸립’이 그를 돌보았다. 그의 부족과 다른 부족들은 돌이나 나무, 금 등으로 만든 우상을 숭배하였다. 사람들은 카으바 근처에 여러 우상들을 놓아두곤 했는데 그 우상들이 액운을 물리치거나 길운을 불러들인다고 믿었던 것이다.

 예언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는 신뢰할 수 있는 자였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누군가를 배반한 적이 없으며 거짓말을 하거나 속임수를 쓴 적이 없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알-아민’, 즉 ‘신뢰할 수 있는 자’라고 알려져 있었다. 여행을 가야 할 때면 사람들은 그에게 귀중품을 맡기곤 하였다.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그였기에 사람들은 또한 그를 ‘앗-싸디끄’ 즉 ‘진실한 자’라고도 불렀다. 그는 예의 바르고, 말에 조리가 있으며 타인을 돕는 것을 좋아하였다. 주위 사람들은 그를 사랑하였고 존경하였다. 그는 훌륭한 인품을 지녔기에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진실로 그대는 고결한 품성을 지녔도다” (꾸란 제 68장 4절)

토마스 칼라일[1]은 그의 저서 <영웅숭배론>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 바 있다 :

 ‘그러나, 그는 청년 시절부터 생각이 깊은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동료들은 그를 ‘알 아민’(신뢰할 수 있는 자)이라고 불렀다. 그는 진실했고 성실했다. 그의 행동과 말과 생각에는 진실함이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언제나 진중하였다. 그는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며,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는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말을 할 때면 그는 시기 적절한 말을 하였으며 현명하고 솔직하게 말하였으며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종류의 말이야말로 진실로 가치 있는 말이다. 그의 인생을 살펴보면 그는 충실하고 형제애가 깊으며 꾸밈없는 자로 인정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지하고 성실한 성품 ; 그러나 편한 느낌의, 친절하고 함께 있고 싶은 자. 이에 더해 그에게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유머감각이 있었다 : 반면 어떤 이는 내면이 진실하지 못한 만큼 어색한 유머를 구사한다. 그들은 웃을 줄 모른다. 자연스럽고 열정적이면서도 공정하고 진실만을 말하는 자! 동물적 감각, 번뜩이는 재치 ; 계발되지 않은 야생의 재능; 그는 사막 한 가운데서, 홀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예언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는 계시를 받기 전에 ‘히라’ 동굴에서 혼자서 명상에 잠기기를 좋아했다. 그는 동굴에 한번 머물면 며칠 밤을 그곳에서 보내곤 했다.

 그(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는 허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 그는 술을 마시지 않았으며 우상에 절하지도 않았다. 우상을 걸고 맹세를 하거나 우상에 희생물을 바치지 않았다. 그는 주위 사람들 소유의 양을 돌보는 양치기였다. 예언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모든 예언자는 양치기였노라.’ 이에 그의 교우들이 질문했다. ‘당신도 그러합니까?’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렇노라. 나는 이전에 ‘메카’ 주민의 양떼를 돌보았노라.’ (‘알-부카리’가 수집한 하디쓰, no.2143)

 예언자 무함마드(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의 나이가 40살이 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는다 : 그 때 그는 ‘히라’ 동굴에 있었다. 신앙인의 어머니 ‘아이샤’(하나님께서 그녀를 흡족히 여기시기를)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

 하나님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계시의 징조는 길몽(吉夢)이었다. 그가 보았던 꿈은 새벽녘의 여명처럼 모두 현실로 이루어졌다. 그 후 그는 혼자서 명상에 잠기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는 ‘히라’ 동굴에서 은둔하며 묵상에 잠기곤 하였다. 가족에게 다시 돌아가기 전까지 그는 그렇게 며칠 밤 동안 경배행위를 계속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양식을 챙겨갔으며, (음식이 다 떨어지면) ‘카디자’(예언자의 아내)에게 돌아가서 다시 양식을 가지고 갔다. 그러던 중, 그에게 진실이 도래하였고 그 때 그는 ‘히라’ 동굴에 있었다. 그에게 천사가 다가와서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읽어라!’ 그가 대답하길 ‘나는 읽을 줄 모릅니다.’ 그가 덧붙였다. : ‘그 천사는 나를 잡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세게 나를 껴안았다. 그 후 천사는 나를 풀어준 후 다시 말했다. ‘읽어라!’ 내가 대답하길 ‘나는 읽을 줄 모릅니다.’ 그 천사를 나를 잡아 다시 한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세게 나를 껴안았다. 그 후 천사는 나를 풀어준 후 다시 말했다. ‘읽어라!’ 내가 대답하길 ‘나는 읽을 줄 모릅니다.’ 그 천사는 나를 잡아 세 번째로 나를 세게 껴안았다. 그 후 천사는 나를 풀어준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 1. 그대 주님의 이름으로 읽어라. 그분은 창조하신 분이시라. 2. 그분은 들러붙은 것으로부터 인간을 창조하셨도다. 3. 읽어라. 그리고 그대 주님은 가장 풍성히 베푸시는 분이시라.” (꾸란 제 96장 1-3절)

하나님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는 심하게 떨면서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아내이자 ‘쿠와일리드’의 딸인 ‘카디자’에게로 가서 말했다. ‘나를 덮어주오, 나를 덮어주오’ 그녀는 그를 담요로 덮어주었고, 공포가 사라진 후 그는 카디자에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알려주었다. ‘실로 나는 나 자신에 대해 겁이 났소.’ 이에 카디자가 말하길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맹세코, 하나님께서는 결코 당신에게 모욕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친척관계를 돈독히 해왔고, 불쌍한 자와 가난한 자를 도왔습니다. 또한 손님을 융숭히 대접하고 필요한 자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그 후 카디자(하나님께서 그녀를 흡족히 여기시길)는, 그녀와 조카 관계에 있는 ‘와라까 이븐 나우팔 이븐 아사드 이븐 압딜 웃자’ 에게로 그를 데리고 갔다. 그는 ‘무지의 시대’(이슬람이 도래되기 이전의 시대)에 기독교로 입교하였으며 히브리어 책을 기술하고, 신약성경의 일부를 히브리어로 적기도 하였다. 당시에 그는 나이가 많아 시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카디자는 그에게 말했다. ‘사촌 오빠시여, 당신의 조카가 하는 말을 들어봐 주십시오.’ 이에 와라까가 그에게 말하길 ‘오 조카여! 무엇을 보았는가?’ 이에 하나님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그에게 알려주었고 와라까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 천사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로 보낸 바로 그 천사라오. 내가 나이가 젊어서, 그대의 마을 주민들이 그대를 쫓아낼 때까지 살아있을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이에 하나님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가 말하길 ‘아니, 그들이 저를 쫓아낸다구요?’ 그가 말했다. ‘그렇소. 그대가 받은 그 메시지와 유사한 것을 받은 자 중에 사람들로부터 적대 행위를 받지 않은 이는 아무도 없소. 그 날까지 내가 살아있다면 내가 그대를 많이 도울 것이오.’ 그 후 그는 오래 머물지 못한 채 운명을 달리했고 계시 역시 잠시 멈추었다.’ (‘알-부카리’가 수집한 하디쓰, no.3)

위 하디쓰에서 언급된 꾸란의 장(제96장)은 그에게 ‘예언자’로서의 임무가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후 그에게 다음과 계시하셨다.

오, 담요로 덮힌 자여! 2. 일어나서 경고하라. 3. 그리고 그대 주님의 위대함을 찬양하라. 4. 그리고 그대 옷을 정화하라. 5. 그리고 우상을 멀리하라.” (꾸란 제 74장 1-5장)

이 꾸란의 장(제 74장)은 그에게 ‘사도’로서의 임무가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다.[2] 이 장이 계시됨과 동시에, 예언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슬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그와 가까운 자들부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그를 완강히 거부하였다. 이는, 그가 전파하는 메시지가 그들이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삶의 방식 그 자체이다. 이슬람은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적 측면 모두를 다루고 있다. 이슬람은 당시 우상숭배자들에게 하나님 한 분만을 경배하고 우상 숭배를 그만둘 것을 명령하였고 또한 그들이 즐겨 해왔던 여러 가지들도 금지하였다. 즉 이슬람은 이자를 취하거나 술을 마시는 행위, 혼전성교, 간통 및 도박 등을 금지하고 있다. 이슬람은 또한 사람들에게 공정하고 정의롭게 행동할 것을 주문하였고, 그들 사이에는 신앙심 이외에 어떤 차이점도 없다고 설파하였다. ‘꾸라이쉬’(아랍인들 중에서 가장 높은 위치의 부족)은 자신들과 노예들이 동일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슬람을 완강히 거부함은 물론이거니와 이에 더해 그들은 그에게 위해를 가하고 그를 비난하였다. 그들은 그를 미친 자로 취급하거나 주술가 또는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웠다. 그들은, 이슬람 이전에 결코 그에게 비난거리가 될 수 없던 것들로써 그를 비난했다. 그들은 무지한 대중들을 선동하여 그에게 해를 끼치고 그의 교우들을 고문하였다. ‘압둘라 이븐 마스우드’(하나님께서 그를 흡족히 여기시길)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께서 카으바 근처에서 서서 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 ‘꾸라이쉬’ 부족들은 한 곳에 모였고 그들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저 자가 보이지 않는가? 당신들 중에 한 명이 아무개 집으로 가서 낙타의 배설물과 피와 양막(羊膜)를 가져오라. 그래서 잠시 기다린 뒤 그가 엎드려 절할 때 그의 어깨 위에 그것들을 던지라.’ 그리하여 그들 중 가장 사악한 자가 그 일을 자원했고 하나님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께서 엎드리셨을 때 그는 그 더러운 것들을 사도의 어깨 위에 던졌다. 예언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는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으셨고, 그들은 포복절도하며 크게 웃어댔다. 이에 누군가가 예언자의 딸인 ‘파띠마’(하나님께서 그녀를 흡족히 여기시길) 에게 갔으며 당시 그녀는 어린 소녀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급히 그에게로 갔으며 그 때도 예언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는 계속 엎드린 상태로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서 더러운 것들을 치운 후 돌아서서는 그들을 욕하였다.’ (‘알-부카리’가 수집한 하디쓰 no.498)

무니브 알-아즈디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 나는 하나님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가 이슬람 이전의 ‘무지의 시대’의 어느 날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오, 사람들이여! 하나님 이외에는 경배받을 존재가 없다고 말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성공할 것입니다.’ 이에 어떤 이들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고 어떤 이는 그에게 흙을 뿌렸으며 또 다른 이들은 그를 욕하였다. 이렇게 점심 나절이 지났고 그 때 어떤 조그만 여자애가 큰 물통을 가지고 와서 그의 얼굴과 손을 씻겨주었다. 그가 말하길 오 딸이여! 네 아버지에 대해 가난이나 모묙을 걱정하지 말라.’ (‘따라바니’가 그의 하디쓰 전집 <알-무으잠 알-카비르>을 통해 수집한 하디쓰 no. 805)

 ‘우르와 이븐 앗-주바이르’가 말하길 ‘나는 ‘압둘라 이븐 아므르 이븐 알-아쓰’에게 우상숭배자들이 하나님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께 행한 가장 심한 짓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했고 이에 그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하나님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께서 ‘카으바’에서 예배를 드리고 계실 때 ‘우끄바 이븐 아비 무이뜨’가 다가와서는 그의 옷으로 예언자의 목을 심하게 졸라맸다. 이에 ‘아부 바크르’(하나님께서 그를 흡족히 여기시길)가 와서 그의 어깨를 잡아 하나님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로부터 그를 밀쳐냈다. 그리고 말하길 ‘너희들은 ‘나의 주님은 하나님이오’라고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죽이려 하는가? 주님으로부터의 명확한 증거가 너희들에게 이미 도래하지 않았던가?’ (‘알-부카리’가 수집한 하디쓰 no.3643)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예언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는 사람들을 이슬람으로 초대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핫즈’(성지순례)를 위해 ‘메카’로 찾아온 많은 부족들을 이슬람으로 초대하였다. 그들 중 ‘야쓰립’(오늘날 ‘메디나’로 알려진 도시)에서 온 몇몇 사람들이 이슬람을 믿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언자가 만약 메디나로 온다면 그를 지원하고 돕기로 약속하였다. 예언자는 우선 ‘무쓰압 이븐 우마이르’(하나님께서 그를 흡족히 여기시길) 를 보내 그들에게 이슬람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메카에 있던 무슬림들은 마을 주민들로부터 갖은 고초를 겪은 후, 하나님의 허락으로 메디나로 이주할 수 있게 된다. 메디나 주민들은 그들을 대환영하였고 상상 이상의 호의로 그들을 맞이하였다. 메디나는 이슬람 국가의 수도가 되었고 ‘다으와’(이슬람으로의 초대)가 전파되는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예언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는 그 곳에 정착하면서 사람들에게 ‘꾸란’(하나님의 마지막 성서)을 가르치고 이슬람의 가르침을 전달하였다. 메디나 사람들은 예언자의 행동 양식에 크게 감명받았다. 그들은 자기 자신보다도 더 그를 사랑하였다 ; 그들은 서로 다투어 그에게 봉사하였으며 그가 하는 일을 돕기 위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제공하였다. 그곳의 공동체는 굳건해졌고 높은 신앙으로 가득 찼으며 그들은 매우 행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고 그들 사이에는 진정한 형제애가 있었다. 모든 구성원은 평등했다 ;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흑인과 백인, 아랍인과 비아랍인. 그들 모두는 하나님의 종교 앞에서 평등했다. 그들 사이를 구별하는 요소는 오직 신앙심 뿐이었다. ‘꾸라이쉬’ 부족이 예언자의 ‘다으와’가 널리 퍼지고 있음을 알게 되자 그들은 예언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와 전쟁을 벌였다. 그 전쟁은 이슬람 역사상 첫 번째 전쟁으로 ‘바드르 전투’라 불린다. 이 전투는 사전준비와 무기 등에 있어서 차원이 다른 두 무리간의 전쟁이었다. 무슬림의 숫자는 314명이었으나 반면 우상숭배자들의 숫자는 1,000명에 달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와 그의 교우들에게 승리를 주셨다. 이 전쟁 이후에도 무슬림과 우상숭배자들 사이에는 많은 전투가 있었다. (메디나 이주) 8년 후, 예언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는 10,000명 규모의 군대를 준비할 수 있었다. 그들은 ‘메카’로 향했고 무력 충돌 없이 그곳을 정복하였다. 이로써 그는, 그에게 해를 입히고 그의 교우를 고문하던 사람들에 대해 승리를 거두었다. 메카 사람들은 그곳에 소유물과 재산을 남긴 채 자신들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쳤다. 그는 그들에 대해 대승리를 거두었으며 따라서 이 해는 ‘대승(大勝)의 해’로 불린다.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도움과 대승리가 도래하였을 때 2. 그리고 그대는 사람들이 무리 지어 하나님의 종교로 입교하는 것을 보았도다. 3. 그러니 그대 주님의 무한한 영광을 찬미하라. 그리고 그분에게 용서를 구하라. 진실로 그분은 뉘우치는 자를 받아주시는 분이시라. (꾸란 제110장 1-3절)

그리고 그는 메카 불신자들을 모아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내가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할 것 같소?’ 그들이 대답하길 : ‘좋은 일을 할 것이오. 당신은 관대한 형제이며 관대한 형제의 아들이오.’ 그가 말했다. 가시오. 여러분들은 이제 자유롭게 갈 수 있소.’ (‘알-바이하끼’가 수집한 하디쓰 no.18055)

이 같은 관대함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이게 한 이유이다. 예언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는 다시 메디나로 돌아갔다. 얼마 후 예언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는 ‘핫즈’(성지순례)를 하고자 하였고 그리하여 그는 114,000명의 교우와 함께 메카로 항하였다. 이 핫즈는 ‘핫자툴 와다아’, 즉 ‘고별 성지순례’로 불린다. 예언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께서 이 성지순례 이후에 다른 성지순례를 수행하지 않았고 이 성지순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서거하셨기 때문이다.

예언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는 ‘히즈라’(메디나 이주) 후 11년이 되던 해, 이슬람력 4월(라비우 앗-싸니) 12일, 메디나에서 운명을 달리하셨다. 예언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는 메디나에 묻히셨다. 무슬림(이슬람 신자)는 그의 서거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  어떤 무슬림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우마르’(하나님께서 그를 흡족히 여기시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무함마드가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자 있다면, 내가 그 자의 목을 벨 것이라!’ ‘아부 바크르’(하나님께서 그를 흡족히 여기시길)는 그 때 연설을 했고,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다.

그리고 무함마드는 단지 사도일 뿐이며 그(무함마드) 이전의 사도들도 이미 지나갔노라. 그러니 그대들은, 그가 죽거나 살해되었을 때 발꿈치를 되돌려 돌아설 것이뇨? 발꿈치를 되돌려 돌아서는 자, 그는 하나님에게 어떠한 해도 끼칠 수 없노라.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에게 보상하실 것이라.” (꾸란 제 3장 144절)

우마르(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는 이 구절을 듣고 나서는 그가 하던 말을 멈추었다. 그는 하나님의 법률을 실천함에 있어 망설임이 없는 자였기 때문이다. 예언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가 돌아가실 때 그의 나이는 63세였다.

그는 예언자의 임무를 받기 전 메카에서 40년 동안을 머물렀다. 예언자직을 시작한 이후 그는 메카에서 13년을 보냈다. 그 곳에서 그는 ‘타우히드’(하나님의 유일성)에 관해 설교하였다. 메디나로 이주한 후 그는 그곳에서 10년을 보냈다. 메디나에서도 그는 계속해서 계시를 받았고 ‘꾸란’(하나님의 마지막 성서)과 이슬람이 그 곳에서 완성되었다.

‘조지 버나드 쇼’[3]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

‘나는 언제나 무함마드의 종교를 높이 사왔다. 그 종교에는 놀라운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종교는 변화하는 생존 환경을 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나의 한결 같은 예견은, 얼마 후 사람들이 무함마드의 신앙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것이었다. 지금 유럽에서 사람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중세의 성직자들은, 무지 혹은 편협성의 소치로 말미암아, 무함마드의 신앙을 너무도 어둡게 묘사해왔다. 사실 그들은 무함마드와 그가 가져온 종교를 증오하도록 교육받아왔다. 그들에게 있어서 무함마드는 적그리스도였다. 나는 그에 대해 계속 연구해왔고 이 훌륭한 남자는, 내 의견으로는, 적그리스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다; 오히려 그는 ‘인간성의 구원자’라 불려야 마땅하다.[4]

 -------------------------

[1] 유명한 역사학자이자 저술가. 스코틀랜드의 에클페칸 출생. 1885년 사망.

[2] 역자주 : ‘사도’(아랍어로 ‘라술’)는 ‘예언자’(아랍어로 ‘나비’)는 여러 측면에서 그 성격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이슬람의 대학자 ‘이븐 타이미야’가 그의 저서 <안-누부와>, p.155 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언자는 이전에 있었던 하나님의 메시지를 재확인하는 임무를 지니는 반면, 사도는 기존의 메시지를 확증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거부하는 자들을 경고하는 임무를 지닌다. 따라서 이슬람의 첫번째 예언자는 ‘아담’(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이며 첫번째 사도는 ‘노아’(그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이다. 무함마드(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는 마지막 예언자이자 마지막 사도이다. 무함마드 이후에는 그 어떤 예언자도, 사도도 존재하지 않는다.

[3] 유명한 소설가이자 비평가. 1950년 사망.

[4] <’시라’ (예언자 전기) 대백과>, 아프잘루 알-라흐만.

Previous article Next article

Articles in the same category

예언자 무함마드 웹싸이트 지원It's a beautiful day